도시 한 곳에 머물며 그 도시와 도시 주변을 돌아다니는 여행을 즐겼던 우리 부부가 개인사정으로 급하게 남자 한 놈만 패키지에 합류하게 되었던 건 비밀로 하자. 노년의 남자 한 놈이 팀에 합류하게 됨에 따른 호기심과 일거수일투족이 관심의 대상이 되었음도 비밀로 하자. 여행의 가장 큰 설레임은 계획할 때임을 모두 알듯이 그 설레임에 이끌려 자유여행을 선호하던 내게 '이런 패키지라면 할만하다'고 생각하게 해준 여행의 이야기를 긁적여 볼까한다. 내가 패키지보다 자유여행을 선호하는 건 '여유로움' 때문이다. 짧은 기간에 여러나라를 돌아다니는 빡빡한 일정, 새벽부터 밤까지 이어지는 강행군이 내 맘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남프랑스 여행은 프랑스 남부만 9박 10일 일정으로 그나마 조금 여유로울 것 같다는 생각으로 합류하였다. 상품 안내에 써있는 미사여구를 믿지 않았음은 넘쳐나는 과대광고 속에서 생긴 본능이며, 여행사의 자극적인 문구에 유혹될 만큼 어리석지 않다는 꼰대 마인드로 이 상품에 큰 기대 같은 건 하지도 않았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번 여행을 통해 패키지에 대한 나의 생각이 바뀌는 계기가 된 것은 인솔자의 성실함 때문일 것이다. 오랜 경륜에서 묻어나오는 노련미와 너무나도 인간적인, 마치 나를 잘 돌봐주는 큰동생 같은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내게는 기댈 수 있는 믿음으로 다가왔음이다. 1. 숙소 호스텔의 도미토리도 불편해 하지 않는 내가, 미적감각 제로인 내가 숙소를 말하기엔 조금 그러하지만 동남아의 5성급 호텔이 아닌 이상 하룻밤 묵기엔 너무나 과분한 퀄리티의 호텔들이었다. 유럽 특유의 모던함과 실용적 인테리어로 불편함이 전혀 없었던 숙소들이었다. 2. 음식 자유여행 중 식사 해결엔 많은 시간이 소비된다. 무엇을 먹을지, 어디서 먹을지, 입맛에 맞는 음식인지 등을 생각하다보면. 그러다보니 가장 무난한 햄버거, 샌드위치로 때우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여행 상품의 설명엔 '품격있는 3코스 프랑스식 식사 10회'라고 되어있다. 무엇이 품격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고 굳이 3코스로 식사를 해야하는 이유를 모르겠으나 고퀄의 식사를 제공받았음은 확실하다. 내가 패키지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인 지역의 특식이라며 제공되는 질 떨어지는 음식과 분명 식사시간이 아님에도 한쪽 구석에 몰아넣고 너희들 바쁜 것 다 알고 있다는 듯 후다닥 나오는 3코스 음식. 빨리 먹으라 재촉당하는 무언의 식사시간... 이번 여행의 식사는 현지인들과 함께 뒤섞여, 현지인들이 즐기는 식사시간과 같이, 현지인들과 같은 속도로 음식이 제공되어 그에따라 우리들도 느긋하게 식사를 즐기며 충분히, 만족스럽게 맛도 의미할 수 있었다. 길어지는 식사시간과 비례해 타들어가는 인솔자의 속 마음은 내 탓이 아니므로 그저 모르쇠. 맛있게 조리된 프아그라, 딱 알맞게 구어나온 비프 스테이크, 미슐랭 가이드 식당에서 내어준 본식인 도미요리, 프랑스 사람은 저렇게 많은 양을 먹는다며 흉을 보았는데 그것과 똑같은 모양과 양으로 나온 리조또(결국 양이 많아 남겼던 것임에도 어두워지던 사장의 얼굴을 나는 보았다.), 닭똥집과 각종 채소 그리고 오리엔탈 소스의 샐러드는 선입견을 넘어 의외로 맛있다는 평을 들었고 오리다리 하나가 통채로 들어있던 음식의 맛에 또 놀라고... 음식을 찾아 다니던 자유여행의 고생도 없이 편안하게 그저 받아 먹기만했던 만족스로운 아주아주 만족스러웠던 시간들이었다. 3. 일정 꽤나 여유로운 일정이었다. 새벽부터 일어나지 않아도 되었고 늦은 밤 호텔에 도착하여 늦은 저녁을 먹은 적도 없다. 여유롭게 출발하였고 여유롭게 일정을 마치고(딱 한 번 길어진 점심시간으로 재촉 당한 적이 있다.) 충분하게 호텔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4. 관광 자유여행의 관광과 패키지의 관광은 다른 듯 싶다. 자유여행의 관광은 느긋한 휴식의 관광이라면 패키지의 관광은 '얼마나 많은 곳을 보고 오는가'의 관광인 것 같다.(적어놓고 보니 나의 취향이다. 일반화의 오류를 범할 수 있겠다.) 다만 자유여행에서는 알 수 없는 깨알같은 지식들을 패키지에서는 다 설명해 주어 많은 지식을 의도치 않게 얻을 수 있는 것 같다. 재미진 프랑스 역사와 관광명소의 배경 설명은 내가 그 곳에 가봐야 하는 충분한 이유가 되었고, 더욱 놀라운 건축 관련 지식과 설명은 교과서로만 배워 이름만 아는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건축양식의 차이점을 확실하게 알게해 주어 성당을 보며 스스로 생각해 본 건축양식이 정답이었을 때엔 희열을 느끼곤 하였다. 천주교 신자라고 말하며 살지만, 성당 미사에 참례만 하는 '발바닥 신자'인 나를 부끄럽게 만든 그의 종교지식. 어떻게 저리 많은 지식을 머리에 담고 있는지 궁금해졌던 인솔자 강기영씨. 인솔자 강기영씨의 입을 통해 나오는 수많은 프랑스 역사와 역사의 인물들, 끝없이 나오는 과거부터 현대까지의 건축가와 그들의 건축물들, 머리가 어질할 정도로 쏟아져 나오는 예술가들과 그들의 작품들, 어떻게 저리 세세하게 알까 궁금하게 만든 가톨릭의 역사, 문화, 예절 등등 더불어 레스토랑 직원들의 국적에 맞는 모국어 유머는 그들을 춤추게하고 그로인하여 더 좋은 서비스를 받게 만드는, 수시로 변하는 인솔자 강기영 그의 사용가능한 언어들.(물론 깊이있는 대화는 하지 못할 것이다. 기영씨 역시 그렇게 말하였고) 5. 아쉬움 이번 여행엔 자유시간이 참 많았다. 그 자유시간에 프랑스 아니 유럽의 낭만인 노천카페에서 에스프레소 한 잔 못해봤음이 못내 아쉽다. 끝없는 호기심으로 자유시간이 주어지면 주변 골목골목 구경하거나 쇼핑이라도 하게 되면 어정쩡한 시간이 남아 폼나게 에스프레소 한 잔하기가 좀 그랬었다. 이런 나의 불만에 인솔자 강기영씨는 명쾌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었는데 아쉽게도 이후엔 커피를 마실 분위기가 안돼 결국 폼잡고 노천 카페에 앉아 에스프레소 한 잔 못마셔 보았다. 기영씨가 알려준 해결책은 다음과 같다. 1. 에스프레소를 주문하고 기다린다. 2. 에스프레소를 가지고 오면 직원을 불러 세운다. 3. 그 자리에서 에스프레소 대금을 지불한다. 이렇게하면 계산하기 위해서 눈치껏 직원을 불러 계산을 부탁하고 다시 영수증을 가지고 올 때까지 기다릴 필요없이 폼나게 에스프레소를 마시다가 정해진 시간이 되면 자연스럽게 일어나 나오면 된다. 좋은 방법이었는데... 6. 행여나 그럴리는 없겠지만... 이 글을 읽고 당신이 이 상품을 선택하였다면 그것은 참좋은 여행이 될거라 말해주고 싶다. 이 글을 읽고 당신이 이 상품의 투어를 마쳤는데 왠지 사기당한 느낌이 든다면? 그 이유는 두 가지. 당신이 인솔자의 설명에 귀 기울이지 않았거나, 혹은 인솔자 강기영씨를 만나지 못하였거나. 7. 맺으며 고속도로의 정체로 집에 들어온 시간은 밤 10시. 라면을 끓여주며 지엄하신 마눌님의 한 마디. '프랑스 음식이 예쁘다, 맛있다 자랑만하고, 어디서 젊은 애들이나 입을 법한 옷을 걸친 사진이나 찍어 보내니...' 인솔자 강기영씨가 전해준 명언 하나. '여행이 즐거운 이유는 돌아갈 곳이 있어서 입니다.' 내 취향에 딱 맞는 여행은 '라르고'(매우 느린 속도로 폭넓게 연주하라는 음악용어)